뇌전증

Epilepsy


뇌전증이란 뇌 조직이 과다한 전기를 방출하는 발작(seizure)이 반복되는 질환입니다. 발작을 일으키는 원인이 다양하므로, 가능하면 그 원인을 찾아 선행 원인을 교정해야 합니다. 뇌전증 치료의 첫 단계는 약물치료로, 전체 환자의 약 70-80%는 일반적인 약물치료로 발작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 뇌전증이란?

뇌는 세포들끼리 전기적 신호를 주고받으며 활동하는 기관입니다. 건강한 상태에서는 이러한 전기적 신호가 적절하게 만들어지고 제어되지만, 여러 원인에 의한 병적인 상태에서 뇌 조직이 과다한 전기를 방출하면 발작이 일어납니다.
발작은 뇌의 염증, 대사 이상, 뇌출혈 등 뇌 활동에 영향을 주는 다른 질환에서도 나타날 수 있지만, 일상생활 중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발작이 반복되는 질환을 뇌전증이라고 합니다. 전체 인구의 0.5-1%에 이르는 높은 유병률을 가지고 있는 비교적 흔한 질환이며, 이 중 약 20-30%는 기존의 약물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 난치성 뇌전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뇌전증은 치료하지 않아도 좋아질 수 있는 양성 뇌전증부터 뇌전증 자체가 정신 발달을 황폐화시키는 뇌전증성 뇌증까지 매우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보통 발작이 시작된 뇌 부위와 퍼져나가는 부위, 발작의 종류와 원인, 발작이 시작된 나이, 병의 경과 등에 따라 약 100종류 이상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뇌전증의 종류에 따라 병의 경과와 치료에 대한 반응이 매우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뇌전증의 정확한 분류와 진단, 그에 따르는 치료 선택이 매우 중요합니다.


  • 뇌전증의 원인

뇌전증은 발작을 일으키는 원인이 다양하므로, 가능하면 그 원인을 찾아 선행 원인을 교정해야 합니다. 소아에서는 대개 유전적 요인, 임신과 출산, 그리고 산욕 기간 동안의 약물 노출, 감염, 손상 등이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인지기능 저하와 발육 지연 등이 동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인에서는 해마 경화증, 뇌종양, 교통사고를 비롯한 각종 뇌 손상, 뇌염, 뇌 수술 후유증, 뇌졸중, 임신중독증, 알코올 중독 등 후천적 원인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 뇌전증의 증상

크게 뇌 전체에서 시작되는 전신발작과 뇌의 일부분에서 시작되는 부분발작으로 나눌 수 있으며, 발작 중 의식 소실 여부에 따라 복합부분발작과 단순부 발작으로 구분 지을 수 있습니다. 뇌전증의 발작은 아무 때나, 어느 곳에서든 일어날 수 있으며, 부분발작이 전신발작보다 더 흔합니다.

1) 부분발작
부분발작 시에는 한쪽 얼굴이 씰룩거리거나,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뒤로 꼬인다거나, 멍한 상태에서 고개와 눈이 옆으로 돌아가면서 침 삼키는 소리를 낸다든지, 정신을 잃고 흐릿하게 무언가를 쳐다보는 듯하면서 손을 만지작거리는 등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의식이 소실되는 복합부분발작은 모든 연령에서 발생할 수 있으며, 꿈을 꾸는 것 같은 상태를 보입니다. 멍하게 한곳을 응시하고, 껌을 씹는 것처럼 움직이고, 옷을 줍고 중얼거리는 등의 행동을 연속적으로 합니다. 때로는 이러한 증상이 있는 동안 걸어 다니기도 하며, 심하게 흥분해서 팔을 흔들고 옷을 벗으려고 하거나, 뛰고 소리치거나 공포로 움츠리는 경우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2) 전신발작
전신발작에서는 갑자기 폐에서 공기가 나오는 소리를 내면서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일시적으로 몸이 경직되고 이후 경련이 시작됩니다.
- 강직발작: 몸이 굳어지는 발작
- 간대발작: 몸이 꿈적대는 발작
- 근간대경련발작: 몸통이 앞뒤로 젖혀지거나 넘어지거나 손발이 마치 졸릴 때 갑자기 움찔거리는 것과 같은 발작
- 결신발작: 소아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눈을 깜빡이면서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는 발작


  • 뇌전증의 진단

1) 환자의 병력
뇌전증 진단에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병력입니다. 가끔 뇌전증과 비슷하게 발작 흉내를 내고 꾀병을 부리거나, 또는 과도한 스트레스가 반복적인 의식 소실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으므로 뇌전증 전문의에게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료를 받을 때는 발작 시간, 발작의 양상과 빈도, 발작 후 증상, 발작 유발 요인, 발작 시 이전 증상과의 변화 유무를 주치의에게 알리면 큰 도움이 됩니다.
2) 뇌파검사, MRI 검사
뇌파검사와 뇌 MRI 검사는 뇌전증의 원인 및 발생 부위를 결정하는 데 필수 검사입니다. 뇌파검사는 뇌전증 발작 동안 또는 발작이 없는 동안에 비정상적인 뇌파가 보이는지, 또 뇌의 어느 부분에서 이상 뇌파가 보이는지 알 수 있는 검사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뇌전증 환자라 하더라도 일반뇌파검사에서 이상이 나타나는 경우는 절반밖에 되지 않으므로, 처음 검사에서 정상으로 나타났어도 뇌전증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으며, 반복 검사를 통해 비정상 뇌파 발견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뇌 MRI는 뇌의 구조를 직접 볼 수 있으므로 뇌종양이나 해마 경화증 등 뇌전증의 중요한 원인을 차지하는 뇌의 이상을 발견하기 위한 검사입니다.
3) 비디오-뇌파검사, 뇌 혈류검사, 뇌 대사검사
그 외에 24시간 동안 환자의 발작 양상을 비디오로 녹화하면서 뇌파를 기록해 환자에게 증상이 발생하는 모습과 그때의 뇌파 변화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비디오-뇌파검사(Video/EEG monitoring), 뇌전증이 일어나는 부위의 기능적 변화 유무를 보기 위한 뇌 혈류검사(SPECT) 및 뇌 대사검사(PET)도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 뇌전증의 치료

1) 약물치료
모든 뇌전증 치료의 첫 단계는 약물치료로, 전체 환자의 약 70-80%는 일반적인 약물치료로 발작을 충분히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중 상당수는 일정 기간 투약 후 약물치료를 중단할 수 있으며, 발작에서 완전히 치유되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약물치료로 잘 조절되지 않는 난치성 뇌전증이라 하더라도 최근 활발히 적용되고 있는 새로운 치료법들에 의해 상당수가 완치에 이르고 있습니다.
2) 수술치료
적당한 약물을 선택해 충분한 용량으로 일정 기간 치료했음에도 불구하고 뇌전증이 조절되지 않는 약물 난치성 뇌전증이 수술치료의 대상입니다. 난치성 뇌전증 중에서도 여러 검사를 통해 뇌전증을 일으키는 부위가 명확히 확인되고 그 부위에 수술적 접근이 가능할 때 수술 대상이 됩니다. 뇌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위는 수술로 제거할 경우 큰 장애를 남길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며, 뇌전증 전문의와의 충분한 상담이 중요합니다.
3) 케톤 생성 식이요법
케톤 생성 식이요법은 정해진 비율에 따라 탄수화물을 극도로 제한하는 고지방 저탄수화물 및 저단백의 식사를 유지해 항경련 효과를 지속시키는 치료법입니다. 기존의 어떠한 약물치료에도 조절되지 않는 일부 난치성 뇌전증 환자에서는 최근 케톤 생성 식이요법이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습니다. 평상시 뇌세포는 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지만 금식으로 당이 고갈되면 지방으로부터 만들어진 케톤체들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데, 이때 에너지 생산이 훨씬 증가해 뇌세포의 기능이 향상되고 항경련 작용이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뇌전증 약물치료 중 주의사항

1) 약물의 종류
현재 시판 중인 뇌전증 치료제는 수십 종에 이르며, 어떤 약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발작 조절 정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뇌전증은 특정 약으로만 잘 조절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뇌전증의 종류를 정확히 분류해 적절한 치료 약제를 선택해야 합니다.
2) 약물의 용량
많은 수의 환자들이 치료제의 영향으로 잠이 많아지거나 어지럽거나, 위장장애 등을 경험하며, 이로 인해 자의로 약의 복용 횟수를 줄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뇌전증 치료제는 제대로 복용해야 치료에 필요한 혈중 약물 농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처방대로 약물을 복용하기 힘들다면 반드시 먼저 주치의와 상의해야 합니다.
3) 약물의 부작용
일반적으로 뇌전증 치료를 시작하면 항경련제를 2-3년 이상 복용하는데, 항경련제는 결국 뇌의 전기적인 활동에 관여하므로 대뇌 활동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최근 개발된 항경련제들은 대뇌에 미치는 부작용이 적어서 비교적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으나, 항경련제를 과다 투여하거나 체질적으로 민감한 일부 환자에서는 항경련제를 장기간 투여할 때 지능 저하가 초래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투약 전후 환자의 인지기능과 대뇌 활동의 저하가 있는지 자세히 관찰해 그러한 영향이 최대한 적은 약제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 약물의 혈중 농도 검사
같은 양의 술을 마시더라도 취하는 정도가 다르듯 사람마다 약제의 요구량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약물의 혈중 농도를 검사해 약제의 항경련 효과가 제대로 유지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 뇌전증 환자의 일상생활 수칙

1) 수면이 극도로 부족한 상태, 수면 무호흡증과 같은 수면장애는 발작 조절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규칙적이고 충분한 수면 습관을 유지합니다.

2) 술에서 깰 때 발작이 유발될 수 있고, 일부 항경련제는 술과 같이 작용할 때 매우 위험할 수 있으므로 금주를 반드시 실행해야 합니다. 

3) 단순 감기를 치료할 때도 일부 약제가 경련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의사에게 항상 뇌전증 치료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또 다른 치료와 관계없이 항경련제는 반드시 지속적으로 복용해야 합니다. 

4) 항경련제는 혈액 속에서 일정한 농도로 유지되어야 효과가 가장 큽니다. 따라서 주치의의 처방대로 제시간에 약을 복용하도록 합니다. 

5) 대부분의 운동을 즐길 수 있지만, 운동 중 발작이 일어날 경우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높은 수영이나 자전거 타기, 등산, 스키 등은 주의가 필요하며, 머리에 충격을 주는 운동은 피하도록 합니다. 

6) 의식 소실이 있는 뇌전증을 앓는 사람들은 운전이 금지됩니다.


<글 세브란스병원 소아신경과 이준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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