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STORY 

길을 찾을 때까지 포기 없이  

꾸준히 노력하는 원칙 지킨다

희귀 유전성 소아 뇌신경질환의 해법 찾는 끈질긴 추적자 강훈철 교수

강훈철 교수(소아신경과)는 인간이 해야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삶의 자세로 견지한다. 많은 경우, 치료법이 딱 나와 있는 질환이 아닌 희귀 유전성 소아 뇌신경질환을 앓는 아이들을 만나기 때문에 자신의 최선 이후에 어떤 길이 열릴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우리 최선을 다해봅시다. 그다음엔 어떤 행운이 올지도 모르잖아요. 영어로 세렌디퍼티(serendipity)라 그러죠. 우연한 발견, 뜻밖의 기쁨 같은 뜻이 있잖아요.” 30여 년 동안 이 길을 걸어온 그의 눈은 넓고 깊어졌다. 질병을 넘어 아이와 부모들, 그들의 환경과 마음까지 살피는 여유가 생겼다.

에디터 이나경 포토그래퍼 최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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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 신경질환이 진료 영역이라 희귀 유전성 뇌신경질환을 가진 아이들을 많이 보신다고요.   

 일반적으로 2만 명당 1명 이하로 발생하면 희귀질환이라고 하는데, WHO에 따르면 6천여 개 정도 됩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희귀 유전성 질환은 근본적인 치료 방법이 없거나 치료가 매우 어렵습니다. 증상만으로는 진단도 쉽지 않고요. 소아뇌전증만 하더라도 그 종류가 30여 개인데, 원인이 다 다릅니다. 드라베증후군처럼 변이가 일어난 원인 유전자가 밝혀진 병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증상을 호전시키고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는 데 주력합니다. 가끔 조기에 진단해 드라마틱하게 좋아지는 환자들이 있어서 보람과 기쁨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렇게 극적으로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우선 좋아진 사례가 궁금해집니다. 

 밥을 먹고 탄수화물을 섭취하는데도 탄수화물이 뇌에 전달이 잘 안돼서 생기는 포도당 전달체 결핍증은 케톤 생성 식이요법을 시행하면 좋아집니다. 비타민 B6가 생성이 잘 안돼서 피리독신 결핍으로 생기는 뇌전증도 있습니다. 이 피리독신 의존성 뇌전증은 피리독신만 섭취하면 바로 일반인처럼 살 수 있지만, 이것을 진단하지 못하면 이 사람은 평생 지적장애를 갖고 살게 됩니다. 발작이 있으면서 조절이 잘 안되고 성장 발달에 지연이 생기는 소아뇌전증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이지만, 딱히 구별할 만한 특징은 없어서 진단에 어려움이 있지요. 이런 종류의 뇌전증은 결핍되어 있는 물질을 보완하면 완전히 좋아집니다. 유전자 분석으로 병명을 정확히 찾으면 정상적으로 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완전히 재앙 같은 삶이 이어지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그와 유사한 예로 한 아이를 평생 괴롭힌 희귀 유전성 질환을 단박에 진단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한 일도 있으시다고요.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네요. 그 아이는 아침에는 아무 문제없다가 저녁이 되면 다리를 저는 명확한 특징이 있었습니다. 서울의 유명 병원에서 뇌성마비진단을 내려서 그런 줄로만 알았죠. 하지만 집 근처 지방 병원의 물리치료사가 이런 뇌성마비는 본 적이 없다며 서울의 다른 병원에 가보라고 권해 세브란스병원에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정년으로 은퇴하신 박은숙 교수님(재활의학과)과 저는 한눈에 그 아이가 세가와병(도파 반응성 근긴장이상증)임을 알아봤습니다. 도파민 부족으로 생기는 병이라 저희는 그 자리에서 도파민 처방을 냈고, 아이는 약을 먹은 후 곧바로 걸었습니다. 그 질환의 특징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진단과 해법은 어렵지 않은 경우에 속합니다. 평생 도파민만 잘 먹으면 일반인처럼 살 수 있으니까요.


진단이 정말 중요한 것 같은데, 앞서 예를 드신 것처럼 그렇게 명쾌한 경우만 있는 건 아니겠지요?  

 정확한 원인 진단은 매우 중요합니다. 대부분 특정 유전자 변이가 원인이죠. 과거와 달리 지금은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으로 한 번에 많은 유전자를 분석할 수 있고, 기술 발전 덕분에 원인 찾기가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물론 비용이나 시간도 크게 줄었지요. 원인을 정확하게 찾으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치료제 선택이 가능한 경우가 드물지 않고, 앞으로의 예후도 예견해 대비합니다. 특히 요즘은 부모에게 질환이 있더라도 시험관시술을 통해 미리 건강한 쪽을 선별해 착상시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근본적인 치료가 없는 질환이 대부분이라 한계를 절실히 느낍니다.



하님정밀의료센터 개소를 준비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이 센터가 희귀 유전성 질환을 앓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희망의 현장이 될 것이라고 보십니까?  

 희귀 유전성 질환의 진단과 연구의 성과가 있다고 해도 실제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기까지는 갈 길이 멉니다. 그 병을 앓고 있는 아이는 보살펴야 할 부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병원에서는 수가 문제로 반기지도 않고, 위기에 빠진 소아청소년과는 이를 감당할 수 없는 게 현실이죠. 이른바 일류 병원에서 진단을 내려도 뒷감당을 하는 데는 주저합니다. 그 현실적인 난국을 해결하려는 곳이 바로 하님정밀의료센터입니다. 깊은 뜻을 가진 한 기부자의 집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여기서는 희귀 난치성 유전질환을 앓고 있는 소아 환자부터 성인 환자까지 다학제 진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치료와 예방, 나아가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부분까지 맞춤형으로 토털 케어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걸어온 세브란스병원에서의 시간이 10년 정도 남아 있습니다. 교수님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중개기초연구도 함께하고 있는데, 마땅한 치료 방법이 없는 질환들의 치료법을 찾는 데 일조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지금은 역분화 줄기세포 관련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환자의 신경세포를 가지고 직접 연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환자의 피부나 혈액에서 얻은 세포를 배아 상태로 되돌렸다가 신경세포로 분화시켜서 다시 변이가 있는 신경세포를 만들어 연구하는 거죠. 치료법을 찾기 위한 방법입니다. 아울러 앞으로는 후학 양성에 더 힘을 쏟고 싶습니다. 오늘의 세브란스병원의 명성과 실력을 이어가려면 후배들을 잘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요즘 의대생들도 워라밸이 가장 중요한 MZ세대인데,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국가 발전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꼰대의 조언을 하는 편입니다. 게다가 그 후배들이 제 주치의가 될 거니까 정말 잘 키워야죠.



명의의 특강

결절성 경화증

치료법 없는 희귀질환,

그러나 최선의 길은 있다

이름부터 낯선 결절성 경화증은 뇌를 비롯해 인체 모든 기관에 영향을 끼치는 희귀질환이다. 안타깝게도 아직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지만, 전문가들의 체계적 관리로 환아들의 일상을 도울 수 있다.

 강훈철 교수(소아신경과)


“결절성 경화증은 온몸에 양성 종양이 자라나는 데다 연령에 따라 종양 발생 부위가 달라지기 때문에 평생 관리해야 하는 환자와 가족의 어려움이 매우 크다. 그러나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더라도 전문가들의 협진을 통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면 환아의 건강과 삶의 질을 훨씬 편안하게 이끌어줄 수 있다.”


뇌와 신경계, 몸 곳곳을 침범하는 희귀질환  

 결절성 경화증은 6,000-9,000명당 한 명의 빈도로 드물게 발생하는 선천성 질환으로 정신지체, 뇌전증, 피부병변 등의 증상이 특징입니다. 결절성 경화증이란 명칭은 뇌의 결절이 석회화되고 단단해지거나 경화되는 증상에 의해 붙여졌습니다. 중추신경계를 비롯한 여러 신체 부위를 침범해 증상을 일으키며, 종양을 발생시킬 수 있어 장기적인 관찰이 필요합니다. 또 관련 증상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해 소아정신과, 소아심장과, 소아신경과, 안과, 피부과, 성형외과, 소아치과, 임상유전과 등 많은 전문가들이 총동원돼야 하는 어려운 질환입니다. 결절성 경화증과 관계있는 TSC1, TSC2 유전자는 상염색체 우성으로 유전됩니다. 환자 약 3명 중 1명은 부모에게 질병을 물려받고, 나머지는 새로운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합니다. 두 유전자의 이상으로 나타나는 임상 증상의 발현은 비슷하나, TSC2 환자에서 신경학적 이상이 더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복잡 다양한 증상, 환아 80%에서 뇌전증 발생  

 결절성 경화증은 신체 모든 부위에 영향을 미치며, 이환되는 기관에 따라 다양한 증상을 보입니다. 뇌전증, 지적장애, 피부병변, 신체 각 부위의 종양 등 4개의 주 증상이 나타나고, 이 외에도 복합적인 증상이 하나 이상 또는 전부 발생합니다.


뇌전증 

환아의 80%가 겪을 정도로 가장 흔한 증상이며, 겉질결절로 인해 발생한다. 영아에서는 주로 영아연축의 형태를 보이고, 자라면서 점차 부분 발작이나 전신발작을 보일 수 있다. 아주 빠른 경우 생후 1주일부터 뇌전증이 발생할 수 있으며, 25% 이상의 환아가 뇌파검사에서 점두 경련의 뇌파가 확인된다. 뇌전증이 일찍 발생 할수록 지적장애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지적장애

지적장애의 빈도는 다양하며, 일부 환자는 원인을 알 수 없으나 자폐적인 성향을 보인다. 환아 약 3명중 1명은 다른 임상적 소견으로 결절성 경화증을 진단 받지만 정상 지능을 갖고 있다. 처음에는 정상 지능을 보이다가 8-14세 이후에 지능 저하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는데, 조절되지 않는 뇌전증 또는 뇌종양에 의한 뇌압 증가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반적인 지능 문제 외에 행동 문제나 자폐적 성향 같은 정신과적 문제, 학습장애 등을 보일 수 있지만, 모든 환아에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경중도의 차이가 있다.


피부병변 

가장 특징적인 피부 소견으로 1-5세 환아의 약 90%에서 코 주위와 뺨에 대칭적으로 혈관섬유종이 나타난다. 붉은 점 형태의 발진이 코, 턱, 뺨, 광대뼈 등에 나타나기 시작해 점차 크기와 숫자가 증가한다. 색소탈실반은 다양한 크기로 백반증과 비슷한데, 체간이나 사지에 타원형이면서 불분명한 경계부로 나타나며, 대개 혈관섬유종보다 일찍 발생한다. 손톱 주위의 섬유종, 샤그린 반점, 담갈색 반점 등이 생길 수 있고, 섬유종은 체간이나 잇몸 주위에도 나타날 수 있다. 일부 환자는 흰머리 다발이 부분적으로 생기기도 하는데, 이를 결절성경화증의 아주 초기 소견으로 보기도 한다.


뇌병변 및 뇌종양

뇌의 병리학적 소견으로는 뇌의 피질과 뇌실막밑에서 신경세포의 수가 감소하고, 과다 증식된 성상세포와 크고 다핵인 기형적 세포로 구성된 결절이 관찰된다.


다른 부위의 종양 및 기타 증상 

환아의 약 절반에서 망막종양이나 망막의 다른 이상이 동반된다. 그 밖에 피부, 폐, 뼈, 간, 비장에서 종양이 흔히 발생한다. 신경계 이외의 증상은 대개 성인기에 발생하며, 환아의 약 3-5%가 겪는 다낭콩팥병은 신부전으로 진행될 경우 신장이식이 필요하다. 여자 환아들의 폐에 주로 발생하는 혈관근육지방종은 치명적일 수 있고, 좌심실 내 횡문근종, 울혈성 심부전이나 부정맥도 발생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뇌전증 치료, 약물과 식이요법 효과적 결절성 경화증 환아의 뇌신경계에서는 뇌실막밑 결절 및 거대세포 성상세포종과 피질결절이 발생할 수 있다. 뇌실막밑 거대세포 성상세포종은 뇌압 상승과 함께 뇌수종을 발생시킬 수 있어서 주기적인 추적 관찰과 제거가 필요하다. 피질결절은 뇌전증을 일으킬 수 있고, 특히 뇌전증 자체로 인지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난치성 소아 뇌전증인 영아연축 또는 레녹스가스토증후군이 발생할 수 있어서, 뇌전증 치료는 매우 중요하다.


소아뇌전증 치료에는 약물요법, 식이요법, 수술, 미주신경자극술이 있습니다. 1980년대 이전까진 치료 약제가 5-6개에 불과했으나, 최근 20년 동안 10가지 이상의 새로운 약물이 개발되었습니다. 기존 약물에 비해 다양한 종류의 뇌전증 치료에 효과적이며, 부작용도 개선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전체 뇌전증 환아의 30%는 약물로 조절되지 않는 난치성 뇌전증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약물치료와 함께 케톤 생성 식이요법이 최근 15년간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습니다. 지방이 전체 식이 칼로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식단으로 혈중 케톤을 발생시켜 항뇌전증 효과를 발휘합니다. 새로운 항뇌전증 약물 사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난치성 경과를 보이는 일부 소아뇌전증 환자에서 획기적인 뇌전증 조절 효과를 보여 주목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케톤 생성 식이요법의 부작용을 줄이고 순응도를 높이기 위해 탄수화물만 제한하고 지방과 단백질 공급을 증가시킨 엣킨즈 식이요법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치료로 증상 적극 관리  

 수술치료는 약물과 식이요법으로 조절되지 않는 뇌전증 발생 부위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수술로 인한 뇌기능 손상이 없을 때 시행할 수 있습니다. 소아뇌전증에서 대표적인 난치성 뇌전증으로 알려져 있는 영아연축과 레녹스가스토증후군은 기존에 전신 뇌전증으로 여겨져 수술이 불가능했으나, 현재 다양한 신경영상검사와 비디오뇌파검사의 도움으로 뇌전증 발생 부위를 국소화할 수 있고 조기수술이 가능합니다. 신경 조절 시술치료의 일환으로 미주신경자극술도 시행하는데, 수술이 불가능하고 약물치료나 식이요법에도 난치성 경과를 보이는 환아에서 뇌전증 조절 효과뿐 아니라 인지행동 측면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수술과 더불어 Rapalog(라파마아신 유사물질)라는 약물을 통해 종양의 크기를 유지하거나 줄일 수 있습니다. 현재 뇌신경계에 발생하는 뇌실막밑 거대세포 성상 세포종과 신장에 발생하는 혈관근지방종 치료에 허가되어 있고, 국가건강보험의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타 행동장애, 지적장애는 각 환아에게 적절한 약물을 사용하거나 특수교육, 작업치료 등을 받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피부병변은 레이저치료, 기타 수술적 치료와 더불어 도포용 Rapalog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강훈철 교수

소아신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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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세브란스병원> 2023년 11월호